학창 시절이나 젊은 날 정말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의 공식 후속작이 수십 년 만에 새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영화를 좋아하는 팬 입장에서는 가슴이 뛰지 않을 수가 없다. 나에게 있어서 <28일 후>와 <28주 후>는 좀비라는 영화적 소재를 단순히 흔한 괴물이나 몬스터 수준을 넘어선 뛰어난 연출과 세기말적 분위기로 풀어낸 전설적인 작품들이었다. 미친 듯이 스크린을 향해 뛰어오는 광란의 감염자들과 사람 하나 없이 황량하게 비어버린 런던 도심의 비주얼은 아직도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있는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28년 후: 뼈의 사원>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그때 그 시절에 느꼈던 신선한 충격과 압도적인 재미를 다시 한번 스크린에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망설임 없이 극장으로 달려갔다. 원작 시리즈에 대한 깊은 애정과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 관람한 입장에서, 이번 영화를 직접 보고 느꼈던 솔직하고 가식 없는 감상평을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28일 후와 28주 후의 기대감을 품고 찾아간 극장
전작인 <28일 후>와 <28주 후>를 너무나 재미있게 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번 신작에 대한 기대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전혀 다르지 않았다. 이전 시리즈들이 보여주었던 특유의 스피디한 스토리 전개, 그리고 당장이라도 스크린을 뚫고 나와 관객을 덮칠 것만 같았던 감염자들의 폭발적인 광기는 기존 좀비 영화라는 장르 자체의 패러다임을 뿌리째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8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흘러 세기말 아포칼립스의 세계관이 과연 어떻게 확장되었을지, 그리고 그 긴 세월 동안 무자비하게 파괴된 세상 속에서 인류와 좀비들이 어떤 방식으로 변하고 적응했을지 기대하는 마음은 영화 팬으로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솔직하게 말하자면, 영화가 모두 끝나고 캄캄한 상영관 안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의 마음속에는 깊은 아쉬움과 씁쓸함이 먼저 밀려왔다. 오리지널 시리즈가 보여주었던 독창적인 긴장감과 숨 막히는 서바이벌 스릴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이번 영화가 보여준 전체적인 완성도와 전개 방식이 솔직히 별로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전작들의 이름값과 명성이 워낙 거대했던 탓도 있겠지만, 단순히 팬으로서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영화 자체가 담고 있는 개성과 몰입감이 이전 작품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긴 시간 동안 기다려온 후속작이었기에 그 허탈함과 아쉬움은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비주얼과 언밸런스한 설정들
원래 좀비라는 장르를 다룬 영화에서 관객들이 돈을 지불하고 기대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시각적인 파격함과 예측 불가능한 기괴함에서 오는 쾌감이다. 나 역시 이번 영화가 <28년 후>라는 기나긴 세월을 다루고 있는 만큼, 전작들보다 훨씬 더 파격적이고 과감한 세기말의 스크린 비주얼을 선보일 것이라 예상했다. 오랜 세월 동안 문명이 완전히 멸망해 버린 세상 속에서 기괴하게 변해버린 생태계나 시각적으로 관객을 단번에 압도하는 거대한 미장센을 기대했지만, 막상 스크린에 펼쳐진 화면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평범했고 파격적이지도 않았다. 기존 좀비물들이 주었던 시각적 쾌감이나 세기말적 압도감에 비하면 다소 심심하고 밋밋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더욱 아쉬웠던 점은 스토리 전개와 연출이 전혀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전형적인 틀에 갇혀있었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핵심 소재나 분위기가 딱히 기괴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연출의 몰입을 방해하는 어색한 설정들이 영화 내내 눈에 띄었다. 특히 아무리 28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좀비와 완벽한 친구 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치 일상의 일부분처럼 구르며 같이 지낸다는 설정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나 언밸런스하게 느껴졌다. 죽음의 공포와 광기만이 가득했던 원작의 세계관에서 갑자기 좀비와 은근히 공존하는 듯한 애매한 분위기를 연출하려다 보니, 기존 시리즈가 가지고 있던 본연의 차갑고 처절한 긴장감이 단번에 깨져버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차라리 좀비와의 처절한 생존 싸움에 집중하거나 전혀 다른 파격적인 기괴함을 선보였다면 좋았을 텐데,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설정이 영화의 몰입도를 크게 떨어뜨리고 말았다.
기존 좀비 팬보다는 아포칼립스 스릴러 마니아에게 어울릴 영화
물론 좀비 영화라는 장르를 선택해서 보러 온 관객이라면 어느 정도 피가 튀고 기괴하거나 잔혹한 연출이 나오는 것은 당연히 감안하고 본다. 나 역시 평소 스릴러나 공포 장르를 즐겨보는 편이라 잔혹함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단순한 시각적 수위보다는 그 잔혹함이 영화 속 서사나 분위기와 얼마나 유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지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잔혹함의 수위나 연출이 서사와 자연스럽게 맞물리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강해서,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기가 참 힘들었다. 보는 동안 '굳이 저렇게까지 연출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몰입이 방해되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28년 후: 뼈의 사원>은 나처럼 <28일 후>나 <28주 후> 특유의 미친 듯이 달려드는 좀비들의 속도감과 숨 막히는 서바이벌 스릴을 원했던 기존 좀비 영화 팬들에게는 다소 큰 실망을 안겨줄 수 있는 작품이다. 전작의 강렬한 인상을 기억하고 극장을 찾은 사람이라면 본인이 원했던 방향과 영화가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대신 통쾌한 좀비 액션이나 처절한 생존극보다는, 황량하고 씁쓸한 세기말 아포칼립스 분위기 자체를 천천히 즐기거나 기괴한 세계관 속에서 펼쳐지는 정적인 스릴러 장르를 선호하는 마니아층에게는 소소하게 즐길 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라도 전작의 화려한 명성만을 믿고 영화관을 찾을 생각이 있는 분이 있다면, 기존 시리즈와는 완전히 다른 결의 세기말 분위기 영화라고 마음을 비우고 가벼운 기분으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후기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