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사회초년생 시절이나 일상에 지쳐갈 때쯤 찾아보게 되는 영화 중에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 다시 봐도 가슴 한구석을 씁쓸하게 만들거나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 있다. 나에게 있어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단순한 패션 영화나 화려한 뉴욕의 오피스물이 아닌, 치열한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직장인들의 애환이 담긴 특별한 작품이었다. 거대하고 화려한 패션계의 뒷골목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내가 걸어왔던 고단했던 젊은 날의 노동과 직장 생활의 단상을 떠올리게 만든 이 영화에 대해, 직접 감상하고 느낀 솔직하고 진솔한 관람 후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앤 해서웨이라는 배우와 독특한 제목이 이끈 첫 만남
내가 이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되었던 계기는 순전히 배우 앤 해서웨이 때문이었다. 평소에 앤해서웨이가 가진 독보적인 아우라와 신선한 연기 톤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녀가 주연으로 나오는 신작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독특하면서도 직관적인 제목이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도대체 명품 브랜드인 프라다를 입는 악마는 어떤 인물일까?', '그 속에서 앤 해서웨이는 어떤 수난을 겪게 될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기대감 속에서 스크린을 접하게 되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스크린 속 패션지 '런웨이'의 화려한 미장센이 펼쳐졌지만,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주인공 앤디(앤 해서웨이)의 고군분투는 사실 전형적인 샐러리맨들의 애환과 비애 그 자체였다. 꿈꾸던 언론사의 기자 자리를 얻기 위해 원치 않는 패션 잡지사의 편집장 비서로 들어간 앤디가 겪는 일상은, 오늘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매일같이 겪어내는 혹독한 생존기였기 때문이다. 까다롭고 숨 막히는 요구를 쏟아내는 미란다 편집장 밑에서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악으로 부딪히는 모습은, 화려한 패션의 겉모습만 빼고 나면 우리네 평범한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일터의 풍경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영화 속 장면과 내가 경험했던 혹독했던 노동의 기억
영화를 감상하면서 가장 가슴 깊이 파고들었던 대목은, 영화 후반부에 앤디가 과감하게 휴대폰을 바리케이트 너머 분수대에 던져버리고 미란다의 곁을 떠나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마지막 사직 장면이었다. 스크린 속 앤디의 그 통쾌한 결단은 많은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겨주었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현실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저런 과감한 행동을 쉽게 던질 수 있을까?' 하는 씁쓸한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당장 당달이 나오는 월급과 생계, 그리고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의 샐러리맨들에게 있어 직장을 던지고 나오는 것은 결코 영화처럼 가볍거나 손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보며 자연스럽게 내가 군대를 제대하고 사회에 나와 처음 몸으로 부딪쳤던 혹독한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영화 속 앤디처럼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상사의 폭언에 시달리는 환경까지는 아니었지만, 당시 나는 군 제대 직후 격주로 주야간 12시간씩 교대 근무를 돌아야 하는 생산직 공장에서 일을 했었다. 낮과 밤이 매주 바뀌는 피로 속에서 오직 체력 하나로 버텨내야 했던 그 시절의 육체적인 고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몸이 부서질 듯 힘들어도 쉽게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악으로 버텼던 내 젊은 날의 경험이 있었기에, 방식은 다를지언정 일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앤디의 모습에 더욱 깊이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에 나만의 기술과 노하우를 만든다는 것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나에게 남긴 가장 커다란 메시지는 단순히 '직장 상사에게 복수하라'거나 '일을 그만두라'는 일차원적인 사이다가 아니었다. 일과 내 자신 사이의 균형, 그리고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과거 우리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한 직장에 들어가지 않고 뼈를 묻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존재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요즘 시대는 이미 평생직장이라는 단어가 완벽하게 사라져버린 시대다. 영화 속 앤디가 아무리 완벽하게 일을 처리해도 미란다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소모품에 불과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 '결국 남이 만들어놓은 틀에 나를 맞추기보다, 나만의 특별한 기술이나 독보적인 노하우를 만들어야 한다'는 단단한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회사라는 울타리가 언제까지나 나를 보호해 주지 않기에, 어디서든 대체될 수 없는 나만의 실력과 역량을 키우는 것만이 진정한 생존 방식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것이다. 사회생활을 새로 시작하는 사회초년생들이나, 매일 반복되는 노동에 지쳐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을 잃어버린 직장인들에게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자신만의 삶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게 만드는 훌륭한 자극제가 되어줄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